우리가 알지 못했던 선교지 | It's All about Him

Posted by Editorial Staff

By 금보다 선교사

북아프리카를 떠나 공부를 하겠다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는 걸음이 쉽지 만은 않았다. 선교지를 가기 위해 처음 미국을 떠날 때 보다 선교지를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때가 어쩌면 나에게 더 많은 믿음을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미국에서의 계획을 물어볼 때마다 ‘잘 모르겠습니다’가 솔직한 나의 대답이었다. 주님의 인도하심 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미국에서 살아가게 될까?’에 대한 그림은 전혀 없었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지나 이제 사역의 참 맛을 알아가는가 싶은 시점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쉬움, 후원교회들과 후원자들에게 실망을 안기는 것이 아닌가, 시험거리가 아닐까 하는 인간적인 두려움을 주님 앞에 드리기까지 오랫동안 나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들을 통해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그 사랑을 깊이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꾸짖지 아니하시고, 부드럽게, 내 수준에 맞게, 차근차근 인도하시고 보여주시는 그 사랑, 성실하신 그 사랑…

남편이 우연히 알게 된, 난민 사역을 하시는 데이비드 선교사님을 통해 volunteer 기도모임에 참석 한 것이 시작이 되어서 정말 보석 같은 주의 종들을 한 명 한 명 알게 되었다. 80이 훨씬 넘으신 나이에 5년째 난민 여인들에게 월요일 마다 미술과 craft를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시는 말린 할머니, 그분을 도와 여인들의 이름표들을 만들어주고 출석을 체크해 주시는 애벌린 할머니, 또 그 시간에 데리고 온 아이들을 돌보아 주시는 조에 사모님과 조안나 자매, 선교지를 가기 전에 난민 아파트 촌에서 같이 살며 수요일 마다 그들에게 재봉 기술을 알려주고 복음을 전하는 애슐리 자매와 아줌마,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JPS (난민들이 주로 가는 병원) 의사 부부들, 방과 후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월요일마다 애프터 스쿨 로 섬기는 신학생들…

첫 기도 모임 때 마음에 뜨거움이 있었고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거나 하겠다고 자원하게 되었다. 월요 모임에 아랍어 통역으로 수요 모임에는 베이비 시터 로 일단 시작을 했다.

10명에서 15명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아줌마들을 섬기는데 나까지 최소한 5명의 스텝이 필요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스텝 한 명만 빠져도 금방 차이가 느껴진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 기도하는 그 한 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아랍어 통역은 쉽지 않았다. 시리아에서 처음 2년간 중동 아랍어를 배우긴 했지만 북아프리카에서 더 오래 살다 보니 많이 잊어 버렸고 북아프리카 아랍어와 이라크 아랍어는 많이 달랐다. 아줌마들은 내 아랍어에 나는 그들의 아랍어에 서로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말린 할머니의 손과 무릎에 이상이 와서 더 이상 성경공부까지 인도하실 수 없게 되었고, 올해부터는 내가 전담해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게 되었다. 인도를 하면서 아랍어 뿐 아니라, 영어를 잘 못하는 아프가니스탄 아줌마들을 위해서도 통역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는데, 그 때 마침 터키 에서 난민으로 살 때 예수님을 영접한 이란 아줌마 미나 를 보내주셨다. (아프칸 말과 이란 말은 비슷해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미나 자매님께서 통역으로 섬겨주시면서 성경공부 모임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동안 아프간 아줌마들은 아웃 사이더 처럼 미술이 끝난 뒤에는 일어나기 미안해서 시간 때우기 식으로 그냥 앉아 있다 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언어로 들으면서 아멘 아멘 하며 반응하기 시작했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사모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아줌마들 가운데에도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선교지에 있었지만 내 자신이 아줌마들을 한번에 열 명씩 모아 놓고 성경공부를 시키고 말씀을 가르칠 기회는 없었기에, 닫혀진 나라에서 선교사라는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늘 맘 졸이며 살았기에, 지금 내가 눈으로 보고 있고 몸소 겪고 있는 이 상황들이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난다.

이 마음이 가난한 여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이 특권에 너무 감사 드린다.

여러 언어로 프린트 하고 준비해야 했고, 아랍어로 성경을 읽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 간 오전 시간은 거의 도서관에서 한 학기를 보냈다. 너무 부족하기에 실수도 많았고 괴로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배운 게 하나 있다.

It’s all about Him, not about me.’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나 자신을 잊는 연습을 많이 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어디에 있든지 날마다의 삶 가운데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 된 삶을 살고, 또 제자를 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금보다 선교사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선교하다가 남편 박사 공부를 위해 텍사스로 와서, 현재 각지에서 온 난민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섬기고 있다.